194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날입니다. 오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마침내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날이었죠. 하지만 광복의 기쁨 뒤에는 복잡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의 혼란이 얽혀 있었습니다. 진정한 독립국가로 서기까지, 한반도는 다시 한 번 분열과 갈등의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광복의 배경과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광복의 배경과 8월 15일이 가진 역사적 의미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면서 우리 민족은 주권을 잃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정치·경제·교육·문화의 모든 영역을 통제했습니다. 한글 사용은 금지되고, 조선의 역사는 삭제되었으며, 수많은 청년이 전쟁터와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 의지는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1919년 3·1 운동을 비롯해 의열단, 한인애국단, 의병 활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광복 후 정부 수립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투쟁과 더불어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영국·중국·소련 등 연합국은 일본과 전면전을 벌였습니다. 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격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은 36년 만에 국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광복(光復)’은 말 그대로 ‘빛을 되찾음’을 뜻합니다. 오랜 억압과 어둠의 시대를 지나, 다시금 자유의 빛을 본 날이 바로 8·15 광복절입니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식민지배의 공백을 메우기도 전에, 한반도는 새로운 분단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의 혼란과 분단의 시작
일본이 항복하자 연합국은 한반도의 통치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소 양국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나누어 점령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각각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한반도는 해방과 동시에 두 개의 체제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소련의 지원 아래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고,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행정을 운영했습니다. 사회 체제와 정치 이념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졌고, 남북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945년 말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는 한반도를 일정 기간 ‘신탁통치’ 하에 두자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국내 정치권을 두 갈래로 갈라놓았습니다. 일부는 신탁통치를 찬성하며 독립 준비를 주장했고, 다른 일부는 즉각적인 자주독립을 요구하며 반탁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런 대립 속에서 통일된 정부 수립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과정
유엔은 1948년 남북의 총선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도록 제안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유엔은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헌법 제정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국회는 같은 해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했고,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습니다.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한반도의 남쪽에는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한 합법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국제사회 또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습니다.
남한의 정부 수립 이후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한반도는 두 개의 독립된 정치 체제를 가진 국가로 분단되었습니다. 이는 곧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광복과 건국이 남긴 교훈과 현재의 의미
광복은 단순히 일제의 통치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주권을 되찾고,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게 된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준비되지 않은 해방이 얼마나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식민지의 잔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 질서를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민의 자주 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광복의 빛은 분단이라는 그림자와 함께했습니다. 남과 북은 다른 길을 걸으며 오늘날까지도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유는, 그날의 감격을 단순히 추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자주독립의 정신을 잊지 않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위함입니다.
광복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가치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의 단합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은 수많은 선열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며, 이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결국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건국은 한민족이 다시 세계 속에서 주체적인 국가로 서기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그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완전한 평화와 통일이라는 또 다른 광복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