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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 하버: 태평양 전쟁의 잿더미 속 도시

by 옥돌v 2025. 4. 4.

태평양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한때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았던 벨리 하버는,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금도 고요한 시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글은 벨리 하버가 왜 중요했으며,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조명하고, 현재와 미래를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보려는 시도입니다.

벨리 하버: 태평양 전쟁의 잿더미 속 도시
벨리 하버: 태평양 전쟁의 잿더미 속 도시


1. 전략적 요충지, 벨리 하버의 탄생과 성장

벨리 하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던 시기, 미국 해군에 의해 건설된 전략적 군항 도시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 도시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군의 반격 전초기지로서 중대한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 전역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군사 거점을 세웠고, 벨리 하버는 그 중에서도 항공모함과 전함의 급유, 수리, 병력 재편성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도시는 철저히 군사적 목적에 의해 계획되었으며, 민간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었습니다. 군 시설 외에도 전투기 격납고, 잠수함 정박 시설, 탄약 저장고 등 대규모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었고, 단 몇 년 사이에 수천 명의 군인과 기술자가 상주하는 완전한 군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건설 초기에는 수많은 자재와 인력이 부족했지만, 미국 본토에서 보내진 원조와 전략적 필요성으로 인해 우선순위를 부여받으며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벨리 하버는 곧 태평양 방면에서 일본군을 견제하고, 마셜 제도, 필리핀, 괌 등으로 진격하기 위한 거점으로 기능하며 여러 작전에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1944년의 레이테 만 해전이나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를 앞두고 이곳은 연합군의 병력 재편성과 보급의 핵심 허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기능 뒤에는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벨리 하버는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되었고, 이곳의 해안선은 병원선과 수송선으로 가득 찼습니다. 또한 군사 기밀이 많은 도시였기에 내부 기록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고, 시민사회는 벨리 하버의 존재조차 오랜 시간 동안 알 수 없었습니다. 이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이 도시가 역사의 그림자에 남게 된 주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2. 전쟁의 종식과 함께 잊혀진 도시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벨리 하버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방치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군사 기지를 폐쇄하거나 민간 용도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벨리 하버는 위치상의 한계와 시설의 특수성으로 인해 민간 전환이 어려운 곳 중 하나였습니다. 무엇보다 외딴 섬에 위치한 이 도시는 민간 경제 기반이 전무하여 자생적인 생존이 불가능했습니다.

폐쇄 이후, 도시는 철저히 봉인되었고 일부 구조물은 해체되거나 이전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인적이 끊긴 이곳은 점차 자연으로 회귀하게 되었고, 방치된 군사시설과 녹슨 철재 구조물만이 과거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벨리 하버는 전후 복구 계획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으며, 국가 기록에서도 한동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벨리 하버를 일종의 ‘기억의 사각지대’로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전쟁 영화나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진주만, 괌, 사이판 등은 자주 언급되었지만, 벨리 하버는 극히 일부 군사 문서에서만 간략히 언급될 뿐, 대중적으로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이는 정보 비공개 정책, 접근성 문제, 그리고 지역 자체의 기반 시설 부족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일부 군사 역사가들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벨리 하버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퇴역자들이 남긴 증언과 당시 항공사진을 통해 벨리 하버의 존재와 규모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후 몇 차례 제한적인 답사가 이루어졌고, 일부 학자들은 이 도시를 태평양 전쟁의 숨겨진 열쇠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벨리 하버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관광지로 개발되거나 역사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지도 못한 채 여전히 폐허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3. 벨리 하버의 현재 모습과 보존 시도

오늘날의 벨리 하버는 철저한 고립 속에 남겨진, 자연과 폐허가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인근 섬이나 본토에서 접근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해상 기상 조건이 좋지 않으면 도달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육지로 들어서면, 당시 사용되었던 활주로, 벙커, 병참 창고 등이 녹슬고 부식된 형태로 남아 있으며, 군사 무기고의 잔해와 탄약 케이스 등이 흩어져 있어 일종의 '역사의 타임캡슐'처럼 보입니다.

생태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은, 수십 년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다양한 희귀 식물과 조류가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벨리 하버를 군사사 뿐만 아니라 생태 보존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구조물의 붕괴 위험과 잔존 군사 폐기물의 유해성 등으로 인해 접근은 극히 제한적이며, 일반인의 방문은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내에서 전쟁 유산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며, 벨리 하버를 복원하거나 보존하려는 시도가 일부 학계와 비영리 단체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군사 유산 보존 네트워크(MHHP)에서는 벨리 하버의 정확한 위치와 구조를 재구성한 디지털 모델을 제작하였고, 이를 통해 가상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또한 몇몇 정치인들과 지방 정부에서는 이곳을 국립역사기념지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제한적 관광과 학술 탐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하지만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의 균형 문제, 높은 복원 비용, 자연 환경 보전과의 충돌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아직 가시적인 진전은 미미한 상태입니다.


4. 유령 도시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벨리 하버의 미래

벨리 하버는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전쟁이 남긴 역사적 상흔이자,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상징이 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과거의 그림자처럼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평화 교육과 역사 보존의 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먼저 학술적 측면에서는 벨리 하버를 통해 전쟁의 실상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전투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인프라,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이후의 폐허까지도 포함하는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아카이빙, 가상현실 체험, 학제 간 연구 등이 병행되어야 하며, 특히 청소년 교육에서 이곳을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이 유의미할 것입니다.

관광 개발 측면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지속 가능한 방식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유산 보존과 환경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억의 여행지’ 형태로 조성하여, 방문객들이 이곳의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어둠의 관광(Dark Tourism)’이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벨리 하버는 태평양 전쟁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충분한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 협력의 측면에서도 이 도시가 지닌 의미는 큽니다. 일본과의 공동 역사 전시, 태평양 전쟁 관련국들과의 평화 기념 행사 등을 통해 벨리 하버를 국제적인 평화 기념지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벨리 하버는 단순한 군사 유산을 넘어, 과거의 상흔을 딛고 미래를 위한 대화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벨리 하버는 여전히 미완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미완성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수많은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전쟁의 폐허가 평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잊혀진 도시가 다시금 이야기되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앞으로 벨리 하버가 새로운 의미의 도시로 재탄생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