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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탈락의 이유는? 선정되지 못한 역사 유적의 사연들

by 옥돌v 2025. 5. 25.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지는 전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인류의 유산’으로 인정받습니다. 이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단순한 명예를 넘어 관광 활성화, 국제 지원, 국가적 자긍심 등 다양한 혜택이 따르기에 각국은 앞다퉈 유산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유적이 등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엄격한 기준과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많은 유산이 등재 심사에서 고배를 마십니다. 어떤 유산은 ‘가치 부족’으로, 또 어떤 유산은 ‘보존 상태 미흡’으로 탈락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서 탈락하는 이유를 중심으로, 그 속에 숨겨진 사연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세계유산 탈락의 이유는? 선정되지 못한 역사 유적의 사연들
세계유산 탈락의 이유는? 선정되지 못한 역사 유적의 사연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 기준: 생각보다 까다롭다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가 제시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충족해야 합니다. 이 가치란 단순히 아름답거나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자연적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네스코는 총 10가지 기준을 정해놓고, 이 중 최소 하나 이상을 만족해야만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합니다.

이 기준들은 다음과 같은 항목들로 구성됩니다:

인류의 창의성이 드러나는 걸작일 것

문화 교류나 문명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

독보적인 건축 양식, 기술, 경관 등을 반영할 것

역사적 사건이나 사상, 전통과 직접 관련이 있을 것

생태학적,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서식지일 것 등

하지만 이 기준을 만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유네스코는 유산이 실제로 잘 보존되고 있는가, 관리 계획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가, 훼손 가능성은 없는가 등도 함께 검토합니다. 이를 위해 현장조사, 서류심사, 자문기구의 평가보고서 등 복잡한 절차가 수반되며,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유산이라도 관리 체계가 미비하거나 보존 상태가 나쁘면 쉽게 탈락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네스코는 ‘과거의 가치를 현재 어떻게 보존하고 있느냐’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세계유산 등재는 단순히 역사적 의미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책임과 국제적 기준의 통과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 문턱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가치 있는 유산도 탈락한다: 대표적 사례들


세상의 모든 유산이 세계유산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대표적인 유산을 신청했지만 탈락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며,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명백한 세계적 가치를 가진 유산이 등재되어 있는 반면, 인도네시아의 바자르 수바르나 불교사원군처럼 역사적 가치가 충분함에도 탈락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는 보존 상태와 접근성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유산은 오랜 내전과 환경 훼손으로 인해 원형 보존이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다른 예는 대한민국의 ‘경기도 남한산성’입니다. 현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초기 심사에서는 ‘보존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보류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보존관리계획을 보완하고, 정비 사업을 수행한 뒤에야 다시 신청하여 등재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일본의 하야카와 지역 고대 산악신앙 유산, 이탈리아의 포이 강 유역 산업 유산, 미국의 프랭클린 광산, 스페인의 카탈루냐 건축 유산 등도 역사적 가치가 있음에도 탈락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유산은 정치적 이유로 탈락하기도 합니다. 신청국과 인접국 사이의 영토 분쟁이나, 유산에 대한 소유권 논란이 있을 경우 유네스코는 등재를 유보하거나 기각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가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세계유산은 국제적 공감대와 철저한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 지역사회의 참여, 그리고 문화재 보존에 대한 철학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왜 탈락하는가: 세계유산 심사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들


세계유산 심사에서 탈락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지적되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부족입니다. 이는 유산 자체의 가치가 명확하지 않거나, 이미 등재된 다른 유산과 비교해 차별성이 부족한 경우에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유사한 형태의 고분군이나 성곽이 세계 곳곳에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신청된 유산이 독창적 요소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중복성이 있다는 이유로 등재가 거절될 수 있습니다.

또한 관리 및 보존 계획의 부실함도 탈락의 주요 원인입니다. 유산이 가진 가치를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거나, 실효성이 부족할 경우에는 심사에서 낮은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관광객의 급증이나 인근 개발로 인한 훼손 위험이 있는 유산은, 실질적인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등재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문제는 특히 보존 자원이 제한적인 개발도상국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더불어 법적 보호 체계의 미비 역시 큰 걸림돌이 됩니다. 유산이 국가적 혹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지 않다면, 향후 훼손이나 변경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네스코는 등재를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정치적 논란이나 국제 분쟁 요소가 포함된 유산의 경우 등재 심사에서 민감한 문제로 작용합니다. 분쟁 지역에 있는 유산은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어려우며, 관련 국가 간 갈등이 지속될 경우 유네스코는 등재를 보류하거나 심사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처럼 서로 다른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유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의 연계 부족도 최근 들어 주요 심사 항목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단지 유산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해당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주민들이 그 유산을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유산이 지역사회와 단절되어 있거나 단지 관광 수익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경우, 유네스코는 그 유산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결국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얼마나 충실히 보호되고 있으며 미래까지 보존될 수 있는지를 국제 사회에 입증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등재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의지와 지역사회의 협력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 고대 유적은 초기에는 불법 개발 문제와 관광객 난입 문제로 등재가 거부되었지만, 이후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정비와 법적 보호 조치를 시행해 결국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중국의 두장옌 수리 시스템 역시 초기 심사에서 ‘기술적 설명 부족’과 ‘역사적 맥락의 애매함’으로 보류 판정을 받았지만, 학술적 자료 보완과 다국적 협업으로 기준을 충족해 등재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한산성, 한국의 서원, 한국의 갯벌 등은 처음 신청 당시 여러 차례 보류되었지만, 각종 조사, 주민 참여, 행정 개선 등의 노력을 통해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유산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보존인가, 왜 이 유산을 세계가 함께 지켜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국가 문화 정책과 시민 의식도 함께 성장하게 됩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단순히 ‘목록에 오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유산을 어떻게 책임지고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입니다. 탈락한 유산도 이 선언과 약속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로, 결코 실패가 아닌 성장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