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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은 ‘예쁜 장소’가 아니다! 유네스코가 보는 진짜 가치

by 옥돌v 2025. 5. 29.

세계 곳곳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소’들이 존재합니다.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절경부터, 예술적 감각이 살아 있는 건축물까지 우리는 종종 이런 곳을 ‘세계유산’이라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유산은 단순히 예쁘고 멋진 관광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장소들 중 상당수는 외견상 그리 화려하거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곳이 아니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세계유산이라는 명칭에는 단순한 미적 판단을 뛰어넘는 훨씬 더 깊고 복합적인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있는 ‘세계유산’의 의미를 바로잡고, 유네스코가 실제로 추구하는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조명해 보려 합니다.

세계유산은 ‘예쁜 장소’가 아니다! 유네스코가 보는 진짜 가치
세계유산은 ‘예쁜 장소’가 아니다! 유네스코가 보는 진짜 가치

 

 

세계유산 = 아름다운 곳? 흔한 오해부터 바로잡자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비슷합니다. 유럽의 고성, 남미의 유적지, 아시아의 고궁처럼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장소들이 그려집니다. 실제로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장소 중 일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유산이 ‘예쁜 곳’이라는 기준으로 선정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인류에게 미친 영향력과 보편적 가치에 초점을 둡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입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과 소수민족이 학살당했던 장소로, 인간의 역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상기시키는 유산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음침하고 차가운 철조망과 잿빛 건물들이 전부지만, 유네스코는 이를 인류가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될 과거로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처럼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단순한 미학적 평가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어떤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가’를 중심에 둡니다. 그 결과 세계유산 중 상당수는 관광 목적보다 교육적, 역사적, 보존적 의미가 더 큽니다. 결국 세계유산은 ‘예쁜 장소’가 아니라 ‘기억하고 지켜야 할 장소’인 것입니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세계유산의 본질, ‘탁월한 보편적 가치’


세계유산을 결정하는 핵심 개념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입니다. 이는 특정 지역이나 민족을 넘어서 인류 전체에게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 OUV 개념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10가지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란 단순히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거나 ‘아름답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류의 창의성과 문명의 진보, 혹은 자연 생태계의 독창성과 진귀함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유산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페루의 마추픽추는 단순한 산악 도시 유적이 아니라, 고산 지대에서 잉카 문명이 어떻게 생존과 문화 체계를 구축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인류 문명사에 기여한 독특한 가치’에 집중한 것입니다.

또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이 특정 시대의 기술, 예술, 신앙, 공동체적 생활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도 중요하게 봅니다. 예컨대 한국의 종묘는 단순한 제례 공간이 아니라 유교적 가치관과 왕실 제사의 전통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세계유산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유산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인류 전체가 공유할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며, 이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등재의 본질입니다. 단지 유명하거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세계유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경관보다 기억, 건축보다 상징이 중요한 이유


세계유산이 단순한 경관이 아닌 ‘기억’과 ‘상징’을 중시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는 유산이 단지 오래된 물건이나 장소가 아닌,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해온 중요한 흔적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유산의 선정 기준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르완다의 집단학살 기념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돔 같은 장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지로는 선호하지 않지만, 인류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의 흔적으로서 세계유산의 지위를 가집니다. 이들 유산은 단순히 장소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기억, 교훈, 인류 공동의 상처를 상징하기 때문에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유산은 소수민족, 지역 공동체, 종교 집단 등 다양한 문화적 존재들이 지닌 정체성을 존중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하이다족 토템 유산, 호주의 원주민 성지 울룰루, 일본의 오키나와 류큐 왕국 유적처럼 특정 공동체의 문화가 세계사의 일부로 인정받는 순간은, 해당 공동체가 세계적 존재로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유네스코는 이처럼 세계유산을 통해 과거의 아픔, 다양성의 가치, 공동체의 정체성을 함께 보존하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유적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공간인 것이죠. 아름답지 않아도, 알려지지 않아도, 인류가 함께 배워야 할 교훈이 담긴 유산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유네스코의 일관된 철학입니다.

 

관광 명소가 아닌 책임의 상징, 세계유산을 대하는 자세


세계유산은 종종 관광산업과 연결되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경제적 자산이 아닌 문화적 책임의 상징이며, 무엇보다 ‘보존’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등재 후에도 지속적으로 해당 유산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고, 훼손 위험이 있다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리스트(Danger List)에 올리기도 합니다. 개발 압력, 무분별한 관광,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유산의 본래 가치가 훼손되면, 경우에 따라 등재가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에 위치한 오리크 유적은 보존 관리 실패로 인해 등재가 철회된 사례입니다.

또한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는 단지 관리 책임뿐 아니라, 해당 유산이 가진 가치를 교육과 연구, 시민 의식 향상에 활용할 의무도 가집니다. 이는 세계유산이 ‘전 세계인의 공동자산’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유산을 단지 소유물로 여기지 말고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관광은 세계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유용한 수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어 유산의 본질이 훼손되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따라서 세계유산을 방문할 때에도 단지 사진을 찍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산이 어떤 맥락에서 지켜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세계유산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약속’이며,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할 가치의 총합입니다. 그곳이 예쁘든 예쁘지 않든, 유명하든 낯설든, 인류의 삶과 생각이 담겨 있는 곳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존중해야 합니다.